목욕을 시켰는지 목에 뽀얗게 분을
바른 아이가 하나, 사람의 알인 아이가
하나 해질 무렵 골목길 문간에 나앉아
터질 듯한 포도알들을 한 알씩 입에 따
넣고 있었다 한 알씩 포도라는 이름이
그의 입 안에서 맛있게 지워져 가고 있
었다 이름이 지워져 간다는 것이 저토
록 아름다울 수 있다니! (나는 때묻은
중랑천 언덕에서 비에 젖으며 안간힘으로
버티고 섰는, 추하게 지워져가고 있는
망초꽃이라는 이름 하나를 본 적이 있다)
아이는 마지막 한 알까지 다 먹었다
포도라는 이름이 완전히 지워졌다 아
이가 말랑말랑하게 웃었다 아까보다
조금 더 자라 있었다 이름이 뭐냐고 물
을 수가 없었다 아이는 이제 자러 갈
시간이었다

           < 포도를 먹는 아이 - 알4 > / 정진규

 
          
                                ... 藝盤 *.*

Marvin Gaye - I Heard It Through The Grapev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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