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데
나는 병 들어 담배도 한 대 피우지 못하는데
아직도 사랑과 욕정도 구분하지 못하는데
낡은 재봉틀 앞에 앉아
늙은 어머니 수의를 만드신다
전구를 넣어 구멍난 양말 꿰매시던 손으로
팬티에 고무줄 넣어 추스려주시던 손으로
이 병신 같은 자식아 지금까지
그런 걸 여자라고 데리고 살았나
힘없이 내 등줄기 후려치던 손으로
삵바느질하듯 어머니 수의를 만드신다
연 사흘 공연히 봄비는 내리는데
버들개지 흰눈처럼 봄바람에 날리는데
죽음이 없으면 부활도 없다는데
몇날 며칠째 정성들여 그날이 오면
아, 그날이 오면 입고 갈 옷 손수 만드신다
돋보기를 끼고도 바늘귀가 안 보여
몇번이나 병들어 누워 있는 나를 부른다
돈 없어 안안팎 명주로는 하지 못하고
굻은 삼베로 속곳부터 만들고
당목으로 안감 넣고 치마 저고리 만드신다
죽으면 썩을 것 좋은 거 하면 뭐하노
내 죽으면 장의사한테 비싸게 사지 마라
사람은 죽는 일이 더 큰 일이다
숨 끓어지면 그만인데 오래 살아 주책이다
처녀 때처럼 신나게 재봉틀을 돌리신다
봄은 오는데 먼 산에 아파트 창틈으로
고놈의 버들개지 봄눈처럼 또 오는데
나는 이혼하고 병들어 술 한 잔도 못 먹는데
죽음이 없으면 삶이 없구나
사람은 살아 있을 때 사랑해야 하는구나
사랑이 희생인 줄 모르는구나


             < 壽衣를 만드시는 어머니 > / 정호승


        
                                                        ... 藝盤 *.*

Paul Mauriat Jesus Cris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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