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오동통 했고 샘이 많았고 말을 썩 잘 지어냈고 식탐이 있었고 질투가 심했고
가끔 고아였음 싶었고 산을 잘 탔고 산딸기나 보리수를 따러 다녔고 반딧불
일 병에 가두었고 대싸리 숲에서 숨바꼭질을 했고 남의 집 돼지감자를 캐먹
었고 우리 집 포도를 훔친 친구를 때려줬고 자치기 훼방 놓고 단방구 하자며
꼬여냈고 썰매타기에서 일등을 먹었고 스케이트 가진 친구가 부러웠고 성
탄절 새벽 송을 돌았고 여름성경학교 때 서울서 온 대학생 오빠들을 좋아했
고 24색 왕자표 크레파스가 갖고 싶었고 레이스 달린 블라우스에 빨간 구두
를 신고 싶었고 바나나를 꼭 먹어봐야지 했었고

마흔의 나는,

기깔나게 멋진 사랑 한 번 못해본 걸 후회하고 결혼한 걸 후회하고 여자로 태
어난 걸 후회하고 수줍음 많은 걸 후회하고 돈 못 버는 걸 후회하고 말 잘 못
하는 걸 후회하고 잘 속는 걸 후회하고 잘 믿는 걸 후회하고 춤 못 추는 걸 후
회하고 노래 못하는 걸 후회하고 공부 많이 못한 걸 후회하고 자식은 하나만
낳아 남부럽지 않게 키울 걸 후회하고 시댁 식구가 단출했으면 후회하고 형제
들이 부자여서 힘겨울 때 기댈 수 있었으면 후회하고 마당이 없는 집을 후회
하고 꽃나무를 잘 키우지 못하는 걸 후회하고 글을 폼 나게 못 쓰는 걸 후회하
고 아직 시인이 못되었는데 시인 소리 들을 때 후회하고 그래도 시를 쓰는 나
를 후회하고 후회하며 사는 나를 자꾸 후회하고,

오늘은 또 이렇게 후회한 걸 후회하고.


                 < 후회하는 나 > / 이시하   

 
                                                                       
                                                                                          ... 藝盤예반 *.*
 


Edith Piaf - Non, Je ne regrette r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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