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1시.

  시는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우문(愚問)이다.

  구원할 수 '있다' 혹은 '없다'의 구분은 이미 시에 기능이나 효용의

  틀을 뒤집어씌운다. 따라서 어떠한 예술 장르가 최초에 성립되었을 때

  본연적으로 갖는 기능이란 두말할 필요 없이 '있음'에 귀착한다.

  따라서 이러한 질문은 그 질문이 던져져야 하는 상황과의 투쟁을 의미한다.

  그것은 이미 '시'의 왜소화, 편협화, 무기력화의 원인을 규명하는 일일 것이다.

  한때는 시가 공동 집단 의식의 대변 언어로서 회자한 적이 있었다.

  지금 시의 기능은 분화되어 고도의 예술성(문학주식회사 내에서 통용 가능한

  악화(惡貨) 천박한 감상주의 등으로 쪼개져 모든 인간에게 부수적 수요 자재


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것은 시가 갖는 본래적인 기능이 다른 예술, 아니 틀렸다,

  다른 사물에게 치환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시가 '구원'으로서 군림해야 할 지금의 위치는? 그 설정 방향은?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따분하고 졸릴 뿐이다.

  그런데 평자들이나 고고한 시인들은 이런 문제를 끝까지

  물고늘어진다(지식에, 논리에 굶주린 Buldog 같다)

  사회학, 철학, 심리학, 심지어 컴퓨터까지 동원하여. 시는 시다. 그리고 말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얘기하고 듣는다. 그리고 감동한다. 감동? 감동......


 
                                       < 참회록 > / 기형도  (`82. 9. 25)


           
   
                                                      ... 藝盤예반 *.*


 
델리 스파이스 - 고백
        
                                                                                                                                                                                

 

'The Mirror Of Soul'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흔들림에 닿아' ♬  (0) 2019.03.18
'뼈 아픈 별을 찾아서 - 아들에게' ♬  (0) 2019.03.15
'마스터 키' ♬  (0) 2019.03.11
'신춘문예는 알고 있다' ♬  (0) 2019.03.08
'공무원' ♬  (0) 2019.03.06

+ Recent posts